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2000)"
별점 : ★★★★☆
1962년 홍콩. 상하이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에 두 가구가 동시에 이사를 온다. 무역 회사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소려진"과 그녀의 남편. 그리고 지역 신문사의 편집 기자로 일하는 "주모운"과 그의 아내. 소려진의 남편은 사업상 일본 출장이 잦다. 주모운의 아내 또한 호텔에서 이하는 관계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홀로 있는 시간이 많은 주모운과 소려진은 자주 부딪히게 되고 어느새 자연스레 가까워진다. 주모운은 소려진이 자신의 아내와 똑같은 핸드백을 가지고 있으며 소려진은 자신의 남편과 같은 넥타이를 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자신들의 배우자가 자신들 몰래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와 동시에 소려진은 사랑하는 이의 곁을 떠나지도 못한 채 슬퍼하고 주모운은 그런 소려진을 위로하며 서로는 어느덧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주모운의 따뜻한 말과 행동에도 소려진은 자신의 남편과 같은 행동을 자신도 한다는 죄책감과 혐오감에 끝내 주모운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이 잦아지는 것을 알아챈 주변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행동을 조심하지만 끝내 주모운은 소려진을 위해 싱가포르로 발령을 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화양연화는 두 주인공 사이의 미묘한 사랑에 대한 묘사가 일품인 영화이다. 주인공들은 배우자들의 불륨에서 오는 심적 고통을 내면화하고 그 과정을 상대방에 대한 연민 어린 사랑으로 승화시키지만 동시에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용납할 수 없는 도덕주의자들이다. 그러하여 결국 주모운은 소려진에게 같이 싱가포르로 가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소려진은 주모운에게 자신에게 와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영화 마지막 부분의 자막처럼 "그와의 만남에 그녀는 수줍어 고개 숙였고 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 버렸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아련하고 슬픔 사랑이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이별 연습을 하는 장면이다. 주모운은 이별 연습을 통해 그녀에게 미리 상실감을 알려주고 그녀의 진심을 알아보려한다. 이 장면에서 주모운은 다신 전화하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그녀의 손은 놓는다. 소려진은 끝내 참아내던 눈물을 쏟아내며 오열하고 그들은 평소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 개인적으론 이 장면이 계속 주모운을 밀어내던 소려진이 진심을 내보인 장면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어쩌면 영화에서 주모운에게 주어진 소려진을 잡을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이런 영화를 보면서 "답답함" 이라는 감정이 당연히 느껴져야 하는데 오히려 "슬픔"이 크게 느껴졌다. 영화가 진지하고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지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모운의 선택에도 화가 나기보다는 "위로"의 감정이 들었다. 사실 누구도 그들의 소심함을 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기 때문에 자신도 바람을 피우겠다는 발상은 실로 유치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런 유치한 생각이 아닌 진실된 사랑이라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부부의 세계"의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대사가 떠오르는데 그들은 끝내 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그것이 관객들에게는 아이러니 하지만 감동과 슬픔, 아름다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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